역사

성지 순례 -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 터 014

leorho 2025. 9. 24. 16:02

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터 — “서울 하늘 아래, 성인 반열이 선포된 날”

 

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터

1) 역사적 사실(1984년, 서울에서 거행된 ‘현지 시성식’)

  • 시성 일시·주례: 1984년 5월 6일,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한국 순교자 103위를 시성했다. 교황이 직접 남긴 강론과 일정 기록에 **“Youido Place – Seoul, 6 May 1984”**로 명시돼 있다. 장소의 현재 명칭: 당시 여의도광장은 지금의 여의도공원 일대이며, 시성 25주년(2009)에 **‘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 기념 표석’**이 설치·축복되었다. 표석 전면에는 교황의 선언문 일부(“이 땅에 빛을! … 세계 교회가 공경하기를 바랍니다.”)가 새겨져 있다.
  • 왜 특별했나: 전통을 깨고 **로마가 아닌 현지(서울)**에서 시성식을 거행한 드문 사례다. (세계 가톨릭사에서도 의미가 강조됨) 성인 구성: 김대건 안드레아·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101위, 총 103위. 이들은 1925년 79위, 1968년 24위로 단계적 시복을 받은 뒤, 1984년에 모두 시성되었다. 전례 축일은 9월 20일. 2) 한국 천주교사 속 위치(비교·맥락)
  • **형성기·박해(1784~1866)**의 ‘결실’: 한양 도심의 창립터·포도청·의금부·전옥서·서소문/새남터로 이어지는 박해 동선의 끝에서, 국가가 금한 신앙이 ‘보편 교회’의 성인으로 공인되는 장면이 여의도에서 벌어졌다. 즉, 도심 박해의 기억 → 공적 시성의 선언으로 이어진다. 2014년의 연장선: 교황 프란치스코가 광화문 광장에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시복하며(2014.8.16) 한국 교회의 순교·증언의 흐름을 다시 현재화했다. (시성: 여의도 1984 / 시복: 광화문 2014) 

3) 지금의 방문 정보(현장 포인트)

  • 표석 위치(세부): 여의도공원세종대왕상 좌측 언덕/산책로 방향, 대략 공원 11·12번 출입구 사이에서 세종대왕상 오른팔 방향으로 약 50m. 표석 앞뒤 문안에 시성 경과와 교황 문구가 새겨져 있다. 
  • 주소 표기 예시: 서울 영등포구 여의공원로 68(여의도공원 잔디마당 언덕). 
  • 스탬프: 코스 운영에 따라 현장 도장 미비서울대교구 역사관(명동) 공용 스탬프를 이용하도록 안내한다(운영 시간 변동 가능). 

4) 역사적 의미 — ‘현지 시성’이 남긴 세 가지

  1. 공적 기억의 역전: 조선의 형장(서소문·새남터)에서 끊긴 생명이, 서울 한복판에서 **‘성인’**으로 공인되며 도시의 기억이 뒤집혔다. 금지의 언어에서 찬미의 언어로.
  2. 보편 교회와의 접속: 로마가 아닌 서울에서의 시성은, 한국 교회가 **‘현지 역사’와 ‘보편 교회’**를 동일한 무대에 올려놓은 사건이었다. 한국 신앙사의 독특함(평신도 자생·대량 순교)을 세계 교회가 현장에서 인정한 순간.
  3. 연속된 증언: 1984년 시성(103위)과 2014년 시복(124위)은 박해-기억-공인장기 서사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. 서울의 여러 표석·성지들은 그 장면 전환들을 지도 위에 박아 두었다.

5) 순례자의 메모(현장 팁)

  • 사진 채증 세트: (1) 표석 전면 문구 근접, (2) 표석 후면 설명, (3) 세종대왕상과 표석의 상대 위치가 보이는 원경—이 3컷을 기본 세트로.
  • 연계 동선: 오전엔 창립터(청계천)·김범우의 집(장악원터)·좌/우포도청·의금부·전옥서도심 박해 지형을 걷고, 오후에 여의도 시성터에서 기도·정리 컷으로 마감하면 서사가 선명하다. 
  • 참고로: 새남터·절두산은 처형·추모의 현장 성지, 여의도 시성터는 **공인(시성)**의 의미 성지라는 역할 차이가 있다.

6) 오늘의 한 문장

“금지의 이름들이, 이 자리에서 찬미의 이름이 되었다.”